일상

무엇이 그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는가

지산동고라니 2023. 8. 4. 13:33

2023년 8월 4일 연일 발생하는 무차별 칼부림 사건으로 사회가 두려움에 떨고있다. 신림역에서 시작한 칼부림 사건부터 시작해 서현역 그리고 다수의 난동 예고까지 커뮤니티를 돌아보면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검복 호신용품 심지어 흉기를 소지하겠다라는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번 흉기난동을 보며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떠오른 이 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며서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는지 내 생각을 정리하며 글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먼저 범인들에 대해서 알아보면 그들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선택의 순각에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냥 모든 난동 사건을 단순 그 사람의 책임으로 몰고가는 것보다는 제 2의 난동 사건을 막기 위해 장기적인 접근 역시 중요하다.

 

신림역 흉긱난동의 범인 조선은 기자들을 향해 "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다.",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라는 말이 인상 깊다. 이는 조선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평가할 때 사회의 평균보다 못하다라는 평가를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위 또는 조선이라는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사람을 접했을 때 자신의 처지보다 나은 상황임을 자주 접했기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것이다.

 

또한 조선은 성장기 시절 불우한 부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교류의 기회가 낮아 부모의 존재는 희미했으며 대부분은 할머니와 살았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검증된 사실은 아니다)

 

그렇게 조선은 30살 이후 쌓여오는 열등감 그리고 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제어를 하지 못하고 신림역에서 무차별적인 살인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절대 범인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 역시 31살이라는 나이이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가정환경이 만약 부모와 정서적 교류가 활발했다면 신림역 조선은 존재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을 기저에 깔고 다양한 생각을 시도해보자

 

위 영상은 어미 리트리버가 자신의 새끼들에게 단호한 모습을 내보이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강아지들의 강한 어미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기 위해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석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에 비해 단순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는 개라는 동물 내에서도 부모와 자식간의 교류를 통해 본능보다는 사회에 적응하 위한 이성을 기를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하듯이 강아지를 입양할 때 갓난 새끼를 입양하지 말라는 세간의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주장역시 기나긴 세월을 인간과 함께 살아온 개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뼈 굵은 지혜를 자식에게 전해주기 위함과 동시에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사회성을 기르는 과정이 아닐까?

 

 실제 묻지마 범죄자 약 55명의 범죄자 중 18명을 대상으로 면담을 시행한 결과 어린 시절 학대, 불우한 가정환경, 노동일에 종사, 충동 조절 장애 등 의 복합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가 시행되었다.(이수정, 2013)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범인들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으며, 개의 모습을 우리 인간에게 대입해보면 부모의 적절한 교육 그리고 정상적인 인간관계 형성의 탈락으로 인한 충동적인 행동이 어느정도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에 기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회는 현재 어떠한 모습인지 살펴보자.

 

현재 20~30대는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다. 또한 자녀의 수가 1~2명인 핵가족에서 교육을 받아온 세대이다. 이러한 20~30대를 특정하는 것은 최근의 범인들이 이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핵가족인 가족환경에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부족함 없이 자녀를 양육해 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부족함 없이 자라온 자식들은 인간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자격이 미달된 채 사회로 내쫓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회성이 결여된 우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제는 고향이 어떠한 특정 마을인 사람은 찾기가 어렵다.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말한다면 광역시 단위 또는 시 단위가 나오는게 일상이니 말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 대부분이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커간다는 말로 풀어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는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강한 인간관계 사회 형성망을 구축할 수 없게 된다. 특정한 A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B가 A를 대체하여 관계형성망을 유지할 수 있기 떄문이다. 이러한 약한 인간관계는 10명 단위 생사를 함께하는 강한 인간관계를 몇 만년간 살아온 인간에게는 아마도 불리한 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예를 통해 한번 이해해보자.

 

만약 당신이 시골에서 15살인 중학생이라고 생각해보자. 마을에는 내 또래(A라고 칭하겠다)는 1명이 있는 상황이다. 나는 A와 다툼을 하고 A가 사과하지 않으면 두번 다시 함께 등교도 놀지도 않을 것이다 라고 다짐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누구일까? 바로 마을의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 물을 것이고, 재판관이 되어 누가 잘못했네 또는 당사자의 부모에게 상황을 전파하여 이들의 관계 재정립을 위해 마을 단위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타의든 자의든 관계없이 다시금 관계를 형성하고 이들의 다툼은 하나의 추억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미래에 다시 이러한 상황이 생겼을 때 처음과는 달리 태연하게 이를 받아들이며 다툼없이 관계를 유지하거나 그 당시의 경험을 통해 다시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특정 지역에 인구가 과밀화되면 위와 같은 상황을 더욱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아파트나 빌라에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그리고 같은 라인에는 누가 사는지에 관심이 없다. 반대로 주택이 즐비한 곳에서 오히려 옆집과의 관계형성이 더 잘된 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묻지마 범죄 이른바 이상행동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인구 과밀화를 없애야 하는가? 장기적으로보면 맞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속에서 어떻게 깊은 사회관계를 유지하고 형성할 수 있을까? 정부, 사회 측면에서 이러한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정부의 입장에서 해야할 방법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서로에게 유대감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테면 다양한 것을 경험하도록 교육하고 이를 발전시켜 사회 집단에 소속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해야한다. 중학교 당시 다양한 체육활동을 경험하면서 성과를 창출하고 이러한 성과가 취미로 이어지며 소규모 집단의 체육동호회에 속하여 사회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함이 옳다.

 

정부는 사실 이러한 사회현상을 관리 감독하고 유도하는 방법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우리 사회가 자발적으로 성장하고 흘러가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내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첫째, 모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한다. 어느샌가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게 어려워지고 있는 사회로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전화도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더 이상 모르는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점차 바꿔야 한다. 또한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귀찮다며 이야기를 끊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사회는 우리가 적응하는 것이 사회이지 나에게 적응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한다.

 

둘째, 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해야한다. 인구과밀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얕은 인간관계로 인해 고립되어 가고 있다. 나 역시도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다분하게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학습을 위한 스터디를 꾸려가며 사람들을 만나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또는 모임을 통해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물론 어려울 수 있다. 그 사람의 성격 외모 등 다양한 것이 내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한단계 성장하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위의 단편적인 모습이 묻지마 범죄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문제는 하나의 원인이 문제가 되는 경우보다도 다양한 문제가 결합 결부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이 학습에만 집중되어 있는 현 시스템의 문제 그리고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인구과밀화로 인한 문제가 그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음에 기여했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